이순신 어록 모음

조회 수 21953 추천 수 0 2010.12.23 11:26:50
피피 *.133.14.182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 마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말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말라
나는 끊임 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 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이순신 어록 중에서...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 칠천량해전 이후 충무공이 다시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 다였다. 그러자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가 떨어졌고, 충무공은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한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勿令妄動 靜重如山)
(1592 년 5월 7일.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좌우도 수군과 육군의 패배 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군사들에게.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지라며.)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生卽死 死必卽生)
(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9월 15일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내며.)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좌수사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나라의 물건을 마음대로 자를 수 는 없다."
( 전라 좌수사가 객사에 사람을 보내어 거문고를 만들 오동나무를 찍어 오라고 고흥지방의 만호인 이순신에게 청하자 이렇게 말하고 거절했다고 한다. )


"장부가 세상에 나서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 을 바칠 것이요, 만일 쓰이지 않으면 물러가 밭가는 농부가 된다 해도 또한 족할 것이다."



현충사에 진열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유물, '장검'도 덩달아 화제입니다. 이 장검은 그 길이가 2m 가까이 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네티즌들의 가장 큰 관심은 '이순신 장군의 키가 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이 장검을 가볍게 휘둘렀냐'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이순신 장군의 키를 추측하는 재미있는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장검은 실제 전투시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장군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지휘용이었다고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평소 이 장검을 항상 벽에 걸어두고 정신 수양에 힘 썼다고 하네요. 장검에는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洞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고 새겨져 있으며, 그 뜻은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에 물들인다'라고 합니다.



출처 :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13&dir_id=130601&eid=fkEE91Tra38a4vSMc%2BCO5fXFt1Wt73do